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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외국드라마

BBC 영국법정드라마 실크(Silk) 리뷰

최근에 볼 드라마가 없어서 예전 드라마를 찾아서 보고 있다. BBC 드라마 실크(Silk)를 봤다. 2011년에 시즌1을 방영하며 시즌3으로 마무리했다. 에피소드는 각각 6부작씩 총 18부작이다.

 

 


'실크'는 런던의 형사 법원실(Criminal Law Chambers) 이야기다. 퀸즈 카운슬의 권위 있는 왕립변호사는 영국 법정에서 가발과 실크 가운을 입기 때문에 실크라 부른다. 법정 변호사 마사 코스텔로가 주인공으로 왕립 변호사 '실크'가 되기 위해 경쟁자 클라이브와 대결 구도로 고군분투한다. 사건은 곧 실적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건을 맡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건이냐가 관건이기도 하다. 양보단 질을 선호하는 것을 보인다.

 

영국은 각 챔버(법원실)마다 행정, 영업, 서기 등 변호사와 사무장 등이 소속이 되어 있고 사건이 수임되면 변호사들에게 분배해준다. 클라이브 리더, 마사, 법정 변호사 사무실 수석 서기관 빌리 램을 비롯해서 이제 막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닉(톰 휴즈)과 니마(나탈리 도머)가 메인 주인공으로 같은 챔버스 소속이다. 법정물이기도 하지만 작은 챔버스 내에서도 정치적인 일이 오고 가기 때문에 드라마는 숨을 쉬지 않고 전개가 된다.

 


 

드라마 자체가 지지부진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다. 미국에 여성을 내세운 대표적 법정드라마가 굿 와이프라면 영국은 실크다. 개인적으로는 실크가 좀 더 드라마 상에서 전문성을 갖춘 것처럼 보였고 재밌었다.

 

열정적인 워커 홀릭 변호사 마사 코스텔로는 이상주의자지만 실용주의자로 직업적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다. 물론 개인으로 취약한 면도 있지만 본인이 사회의 최악의 상황에 놓인 약자에게 변호사로서 강력한 방어를 제공하는 게 정의의 핵심이라 굳게 믿는 캐릭터다. 시즌1 1화에서 마사는 자신에게 배정된 이제 막 졸업한 냉소적인 법대생 닉에게 말한다.

 

"법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다."

“The most important words in law are ‘innocent until proven guilty.’”

 

 

훌륭한 변호사는 변호도 잘해야 하지만 챔버스 내에서도 권력 정치를 협상하며 권력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챔버스라는 배경과 그룹을 보여주며 영드 실크는 영국 내 법과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며 다른 나라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방식의 고유 법체계 입문서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

 

미드를 보다가 영드를 볼 때면 가끔씩 속도가 느리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비단 영드 뿐은 아니겠지만 실크는 야심 차게 매 에피소드를 빠르게 전개한다. 드라마는 마약, 매춘부, 강간 등의 사건들을 따라가는데 피고 측 변호사로서 딜레마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동시에 직업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마사 코스텔로의 삶이 흥미진진하다.

 

이렇게까지 실크가 기승전결이 딱딱 맞고 고급스럽게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제작자인 피터 모펫이 전직 법정변호사였기 때문이다. 다른 영국 드라마 크리미널 저스티스(Criminal Justice) 같은 작품에서도 그는 자기의 과거와 직업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재능 있는 연기자들은 매 회마다 복잡해지는 삶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따뜻함과 쾌활한 성격이 결합된 마사는 인생의 어떤 부분은 희생하면서 결국은 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둔 여성으로 지친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 드라마는 솔직하게 영국에서 여전한 계급주의와 남녀 성차별을 다룬다. 이 같은 차별은 2020년인 오늘 봐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겉보기에는 고풍스러운 영국의 전통이지만 그 전통을 유지하는 치열한 경쟁구도와 법률 체계가 불안해 보일 때도 있다.

 

변하는 사회에서 말로 만든 가발과 멋진 실크 가운이 언제까지 고귀할 수 있을까? 언제나 법정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과 체제를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