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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외국드라마

HBO 체르노빌(Chernobyl) 리뷰

HBO 신작미드 체르노빌을 시청했다. 그 체르노빌 맞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북부 도시 프리피야티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를 재구성한 5부작 미니시리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드라마는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영상을 통해 더 많은 진실 혹은 거짓을 알려 준다.

1화와 2화에서서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 후로부터 초기에 어떻게 진압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근로자들은 물론 윗선까지 방사능에 모두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린다. 인터넷이 생기고 영원한 비밀이 없는 현재에서는 방사능과 피폭이라는 이 끔찍한 단어들이 익숙하지만 33년 전은 아니었다. 사고가 난 후 사람들은 왜 피부가 녹아내리는지, 무슨 일이 정확히 발생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한 상태고 공산주의라는 다른 이념에서 나오는 대처 방식은 흥미롭다. 아니 잔인하다는 말이 맞겠다. 프리피야티는 빠르게 방사능으로 오염되기 시작하고 관리자는 초반엔 그저 문제를 경시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발전소가 폭발하며 대기에 보이는 반응은 다채로운 색을 띠며 아름답다. 처음 보는 우주의 섬광 같은 색에 축제라도 하는 마냥 떨어지는 방사능 잿빛으로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주민들은 이 재앙의 축제를 즐긴다.

백 년 동안 죽어있을 땅, 그리고 어떤 원소는 5만 년까지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소름 끼친다. 그린피스나 UN에서 사망자나 피해자 수를 밝히지만 실제로 정확히 얼마나 많은 인원이 사망했는지는 그 누구도 확신하지 않는다. 이는 피폭이 단기간뿐 아니라 장기간 인체에 서서히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은 이제 원자력으로 발생한 최악의 사고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고 공식적으로는 현재까지 93,000명이 사망했다. 소련에서의 공식 사망자 수는 아직까지도 3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은폐하려던 재앙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그럼에도 더 큰 재앙으로 번지는 일을 막기 위해 노심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본다. 저건 지금 발생한 일이 아니다, 과거의 일이다 라고 위안하지만 두렵다. 우리는 결과와 그 피해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해피엔딩은 절대 바랄 수 없는 드라마가 바로 체르노빌이다. 모든 스포일러를 자세히 알고 있지만 시청자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다. 

사회주의, 국가주의, 공산주의 이 이념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개인이 나라에 대해 단체적으로 보이는 성향이 국가의 이념이 닿아서일까 아니면 민족성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확실한 건 재난 앞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만 존재할 뿐이다. 사고가 났으니 피해가 발생한다. 발전소 직원들, 발전소 화재를 진압하러 왔던 소방관들, 이들을 치료해주던 의료진들, 체르노빌의 혼망을 유지하려던 군인들, 농부들, 일반 시민까지 방사능에 노출된 모든 이들이 아프고 병이 들어간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발생한 재난이지만 HBO와 SKY Atlantic 에서 제작한 미국 드라마인 만큼 출연진 모두가 러시아 억양을 가미한 영어를 쓴다. 제작자는 이에 이렇게 밝혔다.

"주위를 분산시키고 싶지 않은 억양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결국 (드라마) 마지막에서는 언어는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다행히도 정의를 찾으려는, 국가나 단체의 명령을 무시하려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소련 정부에 총살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시청자들은 안다. 잘 만들어진 역사드라마인 만큼 고증은 확실히 해야 하지만 '미국 드라마'이기 때문에 모두가 영어를 쓰고 그 때문에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물을 마실 때, 아 이건 드라마지!라는 생각을 일깨운다. 과물입하며 보는 나에겐 이같은 픽션의 단서가 참 다행이었다.

인상 깊은 대사가 떠오른다.

"진짜 위험이란, 우리가 거짓말을 넘치게 듣는다면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맞다. 지금 당장 이 순간을 되돌아보며 이해를 하는데 핵물리학자가 필요하지 않다.

진실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리뷰는 여기에서 끝이다.

 

<참조>

예고편에 나오는 внимание(vnimaniye)는 어텐션이다. 세계가 방사능 유출에 대해서 파악하자 고르바쵸프는 드디어 방사능에 노출된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키기로 한다. 그러면서 나오는 여자의 음성은 사고 발생 후 프리피야티에 방송된 대피 안내방송으로 실제 나온 방송과 흡사하다.

사고 발생후 프리피야티에 방송된 대피 안내방송

HBO 신작미드 체르노빌(Chernobyl) 예고편

드라마는 한 에피소드당 62분에서 72분 정도다. 다섯 시간이 넘게 시청하면서 매분 느꼈던 건 이거다. 현실은 허구보다 훨씬 잔인했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은 가지 않겠다.